[특별기획] 미국의 재난 시스템(상) '통합지휘-명확한 임무할당-반복훈련'
"구조선 1, 3호는 2명씩 타고 2, 4호에는 응급치료요원까지 3명이 동승한다. 1·2호는 호수 서쪽을 맡고, 3·4호는 동쪽으로 간다." 발렌시아 인근 캐스테익 호숫가에 자리잡은 대책본부. 댐 붕괴로 홍수가 나서 고립된 시민들을 구조하는 모의 훈련이 한창이다. 지휘본부장을 맡은 LA시소방국(LAFD) 데이비드 베이커 캡틴은 80여명이 넘는 구조인력에 주저없이 임무를 할당했다. "현장 구조를 돕는 지상반은 3개반이 대기한다. 구조 계획수립반, 장비전담반, 예산담당반은 20분 뒤 다시 브리핑한다." 현장 도착 후 상황 파악, 임무 분담, 출동 명령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속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통합 사고지휘체계인 ICS(Incident Command System)에 있다. 베이커 캡틴의 업무 할당은 ICS 시스템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ICS는 한국의 사고 중앙대책본부에 해당한다. 주로 관료가 수장을 맡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ICS 최종 책임자가 현장 전문가다. 소방국 경력 25년 베테랑인 베이커 캡틴은 구조전담반 출신이다. ICS는 LAFD가 1976년 고안했다. 대형 산불이 잦은 지역특성상 타지역 소방국 지원이 잦았다. 서로 다른 팀이 모이면서 소방관 수는 많아졌지만 효율성은 떨어졌다. 베이커 캡틴이 지적한 당시의 문제점은 최근 한국의 세월호 참사 상황과 흡사하다. "너무 많은 보고가 한꺼번에 지휘관에게 쏟아졌고, 서로 다른 조직간 대응방법이 달랐다. 또 피해 상황에 대한 정보도 제각각이었다. 조직간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했고 대응계획 수립은 늦어졌다. 명령 체계가 불분명해 혼선이 왔다. 조직간 현장 용어도 달랐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안된 ICS는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했다. 지휘관 아래 3명의 참모가 의사결정을 돕는다. 언론담당관, 조직간연락관, 안전담당관이다. 그 아래 실행부서는 4개다. 현장구조반, 구조계획수립반, 장비전담반, 재정담당반이다. 베이커 캡틴은 "현장구조반을 나머지 3개부서가 지원하는 형태"라며 "초기 대응에서부터 이미 재정지원까지 염두에 두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통합된 대응 시스템은 극히 세부적이다. 각 소방국내 구조요원들의 헬멧까지 통일됐다. 빨간색은 캡틴, 노란색은 구조요원, 파란색은 응급치료요원으로 쉽게 식별 할 수 있게 했다. ICS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체계적인 시스템 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에 있다. 현장구조반의 USAR(Urban Serach And Rescue)팀은 ICS의 핵심 인력이다. 국가적 재난시 연방정부가 각 소방국의 최정예 구조요원들을 선발해 조직한다. 전국에 28개팀이 있고 이중 가주에 8개팀이 배치됐다. 1994년 노스리지 지진을 비롯해 1995년 오클라호마 폭탄테러, 2001년 911 테러,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0년 아이티지진 등 극한상황에는 어김없이 USAR팀이 출동했다. 이날 훈련에 참가한 4개 소방국의 급류구조반 240여명은 전원 USAR팀원으로 엘리트중의 엘리트다. LAFD내 3600명의 소방관중에서 USAR팀 선발 자격자는 200명에 불과하다. LAFD는 지난해 3년만에 SWRT 팀원 선발시험을 치렀다. 뽑힌 인원은 고작 5명이다. 시험응시자격을 얻는 것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5년 이상 근무경력에 잠수 자격증 등 7개 과정 40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댄 맥퀸 LAFD 소방관은 "전체 이수 과정은 근무와 병행하기 때문에 평균 2년이 걸린다"면서 "USAR팀원이 되려면 최소 7년이 소요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USAR팀의 훈련 강도는 상상조차 어렵다. 급류, 건물잔해 구조, 터널붕괴, 잠수, 로프 구조 훈련, 암벽 등반 등 수백가지의 시나리오를 반복 학습한다. 맥퀸 소방관은 "충분히 똑똑하고, 충분히 강한 사람만 USAR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뉴얼대로 사람이 움직이게 하는 힘은 끝없는 훈련에서 나온다. 각 소방국은 연례 FEMA 통합 훈련외에 분기별로 정식 훈련을 하고, 매달 1~2차례씩 전체 훈련을 거친다. 이와 별도로 각 소방관들은 6개월마다 개인 체력검사도 통과해야한다. 3차례 떨어지면 해고될 수 있다. 베이커 캡틴은 "재난시 의사소통 실패는 곧 전체 구조의 실패를 뜻한다"며 "통합훈련은 서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 것"이라고 말했다. LAFD는 최신기술인 무인정찰기 도입도 고려중이다. 팀 트라우릭 캡틴은 "통상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휘본부장에게 사건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구현 기자